국악에 쓰이는 기보법은 여러 종류가 있었으나 지금은 정간보(井間譜)와 오선보(五線譜)가 많이 쓰인다. 정간보(井間譜)는 종이에 네모 칸(이를 '井間'이라 함)을 세로로 이어 그 속에 율명의 첫 글자를 한자(漢字)로 적어 기보하는 것으로 조선 세종(世宗)때 만들어졌다. 정간보에서 음의 높이는 정간 안에 쓰여진 문자 즉, 율명으로 표기하고 옥타브 표시는 문자의 변(邊)에 따라 구별된다. 예를들면 기본음인 황종은 '黃'으로 표기하고, 한 옥타브 높은 음은 삼수변을 붙여 '潢'으로 나타내며, 두 옥타브 높은 음은 삼수변 두 개를 붙여 '潢'으로 나타낸다. 그리고 한 옥타브 낮은 음은 인변을 붙여 '債'으로표기하며, 두 옥타브 낮은 음은 '두 인변'을 붙인다. 옥타브 높은 음의 율명에 삼수변을 붙이는 것은 '淸聲'의 '淸'에서 따온 것이며, 옥타브 낮은 음에 인변을 붙이는것은 '倍聲'의 '倍'에서 따온 것이다. 조선 전기만 해도 12율 4청성이라 하여 16음만 주로 사용하여 배음은 주로 사용되지 않았지만 조선 말기에 이르러 음역이 넓어지면서 배음이 사용되어 표기가 이루어진다.
많은 이들이 정간보가 세종 때부터 지금의 모습으로 유지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처음에는 가로선과 세로선을 교차하여 만들어진 단순한 사각 공간 안에 음을 표기하였다.

그림1 - 세종시대의 정간보

 

 

정간보가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은 1953년으로 국립국악원에 의한 정간보 표준화 작업에 의해 현재 모습이 되었다.

그림2 - 현재의 정간보

 

 

그 모습은 세로쓰기형 원고지와 많이 닮았는데 原稿用紙 (Genkō yōshi, 원고용지)는 1681년 일본에서 시작되었다.
정간보는 악곡 전체는 세로쓰기를 기본으로 하여 우에서 좌로 쓰지만 한 정(井) 안에서는 세로쓰기를 기본으로 하고 좌에서 우로 표기한다. 그 시기 대표적인 시 윤동주의 '서시' 원본을 보면 당시의 표기 방법을  알 수 잇을 것으로 본다.

 

그림3 - 윤동주 '서시' 원고 


우리나라에서 가로쓰기가 일상에서 완전히 자리를 잡은 것은 1988년 한계레 신문이 가로쓰기를 시작하여 1990년에 들어서면서 모든 신문들이 가로쓰기를 하고 난 이후라 보면 세로쓰기를 기본으로 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나 이제는 가로쓰기가 대세인데 정간보도 가로쓰기를 해 보는 것은 어떠한가?

현재 정간보의 표기와 읽는 순서 그리고 오선보와의 관계는 다음과 같다. 오선보는 실제음보다 반음 낮게 표기하였다.

 

그림4 - 정간보와 오선보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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