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Story of Danso

다시 쓰는 단소 이야기

Korean Whistle 2015. 9. 8. 14:43

단소(短簫)라는 이름이 소(簫)의 짧은 형태임을 감안하여 그 역사를 살펴보자. 동서양을 막론하고 관악기의 기원은 동물의 뼈 또는 죽은 사람의 뼈를 사용하였다. 이를 골초(骨哨)라 하고 오래 된 것은 역사가 기원전 7,00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신석기 후반에 들어오면서 대나무가 중요한 악기 재료로 사용되는데 중국 기록을 보면 소(簫)는 순(舜) 임금이 만들었다고 하고 황제(黃帝)때 영윤(伶倫)이 만들었다고도 한다. 그들이 모두 전설상의 인물임을 생각할 때 그 기원은 아주 오래된 고대시대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초기의 소(簫)는 가느다란 대나무 통을 엮어 현재의 팬 파이프(Pan-Pipe)와 비슷한 다관악기(多管樂器)로 두 가지가 있었다. 관의 아래를 납밀(臘蜜)로 채워 음높이를 조절한 저소(底簫)와 관의 아래를 막지 않고 위에 취구(吹口)를 만들어 연주한 것을 동소(洞簫]라고 하였다.
이후 단일관(單一管)으로 지공(指孔)을 뚫어 음높이를 조절하여 세로로 부는 악기가 만들어지니 처음에는 이를 적(笛)이라 불렀고 그 기원을 중국의 소수민족 강족(羌族)이 사용하던 강적(羌笛)으로 본다. 漢(한)나라 무제 때 장건이 서역을 다녀오면서 플루트의 원형인 가로로 부는 악기를 들여와 개량하니 이를 적자(笛子, DIzi)라 하였다. 악기의 구분이 생기고 이름이 변하게 되는데 세로로 부는 악기는 소(簫), 가로로 부는 악기는 笛(적), 그리고 다관악기였던 원래의 소(簫)는 배소(排簫, Pai-Xiao)라 불리게 되고 오늘날까지 전해온다. 반면 다관악기의 한 종류였던 동소(洞簫)는 후한(後漢) 대에 와서 거의 사용되지 않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지금까지 전해져 이를 소(簫)나 봉소(鳳簫)라 불린다.
초기의 단일관으로 만들어진 소(簫)는 적(篴), 약(籥)과 같이 앞면에 지공이 3개 또는 4개의 것을 만들어 사용하다가 중국 전한(前漢) 때 경방((京方)이라는 학자가 처음으로 악기 뒷면에 지공을 뚫어 5공이 된 후 위진남북조 시대에 이르러 앞면에 지공이 하나 더 만들어져 6공소(孔簫)가 되어 지금까지 연주되고 있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1949년 이후 악기개량 사업이 전개되는데 이 때 앞면에 2공이 더 추가하여 오늘날 소(簫, Xiao)의 형태가 된다.
소(簫)는 중국의 남북조와 당나라를 시기를 지나면서 여러 형태로 변형되는데 남소(南簫, Nan-Xiao), 척팔(尺八, Chi-ba()과 함께 관의 아래 위가 뚫려 있다 하여 동소(洞簫, Dong-Xiao)가 다시 등장한다. 동소(洞簫)는 기존 소(簫)에 비해 내경이 커지고 길이도 짧아진다. 동소(洞簫)는 고려 예종 때 대성아악이 수입되면서 같이 들어왔다는 기록이 있지만 백제 의자왕이 일본으로 보낸 헌물장에 척팔(尺八, 일본에선 Shakuhachi)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중국의 남조와 교류가 많았던 백제시대에 이미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겠다. 동소(洞簫)는 이후 향악화되어 퉁소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에서 널리 유행하게 된다.
단소의 유래에 대해서는 청에서 유입되었다는 설도 있지만 선교사 마테오 리치에 의해 중국에 전래된 양금(洋琴)이 다시 조선 영조 때 우리나라에 들어오고 이와 같이 연주할 악기가 필요해 짐에 따라 기존의 퉁소가 변형되어 순조 때 단소가 생겨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 과거의 느리고 구슬픈 음악보다는 맑고 경쾌하며 빠른 음악에 대한 욕구가 퉁소 대신 단소를 선택한 것이라 생각된다. 단소가 줄풍류의 주 선율 악기가 된 것이 현대의 음악 연주홀에서 단소는 비록 음량이 작아 보이나 한옥의 사랑방에서 연주해 보면 악기가 작아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